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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alácio dos Marqueses de Abrantes

포르투갈의 마르빌라 일대, 한때 포도밭과 과수원이 펼쳐졌던 자리에 귀족의 궁전이 서 있어요. 파라시우 두스 마르케제스 드 아브란테스의 뿌리는 킨타 드 마르빌라라 불리던 옛 농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요. 이 땅은 기독교 재정복 뒤에 나누어진 토지에서 출발했고, 12세기에 돔 아폰수 엔히크스가 그 집들과 땅을 주교좌에 기증했어요. 그 뒤로 농원은 오랜 세월 교회의 손에 남아 있었지요.

소유권은 코스타 가문으로 넘어갔는데, 이 가문은 알페드리냐의 추기경으로 불린 조르즈 다 코스타와 혼연이었어요. 영지는 이스포랑 몰가두라 불리는 세습 제도에 묶여 가문 안에서 이어졌어요. 16세기 무렵의 기록에는 이곳이 포도밭, 과수원, 올리브 나무와 귀족 저택을 갖춘 넓은 땅으로 적혀 있어요. 도나 제로니마 드 노로냐는 교회의 허락을 받아 재산을 매년 정해진 돈을 내는 영구 임대 형태로 바꾸었고요. 그 누이 도나 헬레나가 사법 고관이자 시의회 의장인 마누엘 드 바스콘셀루스와 혼인하면서, 이 땅은 바스콘셀루스 가문의 몫이 되었어요. 17세기에 프란시스쿠 드 바스콘셀루스가 초대 피게이로 백작에 오르고, 상속의 사슬은 빌라 노바 드 포르티망 백작을 거쳐 아브란테스 후작가에 닿았어요.

이 궁전의 얼굴은 옛 사진에도 남은 기념비적인 문이었어요. 그 문은 넓은 안뜰로 통하는 정문 구실을 했고, 그 주위에는 작은 종탑을 얹은 예배당과 정원, 마구간과 농사 공간들이 늘어섰어요. 귀족의 살림과 농장의 경영이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돌아가던 곳이지요. 여러 차례의 증축이 겹치면서 세대마다 다른 취향도 건물에 남았어요. 18세기에는 조제 마리아 드 랑카스트르가 어린 나이에 이 모든 것을 물려받았어요. 이후 궁전과 땅은 임대되며 차츰 낡아 갔고, 도시가 동쪽으로 넓어지면서 주변에는 노동자 주택들이 들어섰어요. 한 건물은 186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초등 교사 양성학교로 쓰였고, 안뜰 자리는 나중에 동네 레저 동호회의 터가 되었지요.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옛 예배당의 작은 종탑만은 그 자리에 남아, 이곳이 농원의 중심이던 시절을 오늘까지 이야기해 줍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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